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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영화

46회 서독제 리뷰

이나기_ 2020. 12. 18. 21:17

2020 2학기 과제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갑자기 2.5단계로 격상되는 바람에 카페에서 대기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극장 근처 카페에서 수업을 듣고 바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려던 내 원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몇개의 영화들을 취소하고, 그나마 남은 영화들도 어쩔 수 없이 앞부분의 한두편은 놓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들 속에서도 처음 가본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감들을 받을 수 있었고, 내가 진행중인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극영화보다 단편 다큐멘터리를 중심적으로 보았다.

 

다큐멘터리

 

1.버드세이버 보고서 제 1장

 

버드세이버 보고서는 고속도로의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가 얼마나 많은지, 그 대책인 버드세이버라는 방음벽에 붙이는 새 모양 스티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실험영화이다.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본 나는 영화가 시작된 후, VHS테이프에서 보일법한 해상도와 폰트로 파란 종이 위에 쓰여진 기획서들이 나오자 한 2분간은 ‘아 타이틀 시퀀스가 좀 기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을 비웃듯 영화는 거의 끝까지 버드세이버 기획서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가끔가다 나오는 제 4의 벽을 깨는 나름의 유머가 등장한다.

그리고 종이를 찢고, 감독 본인(확실하지는 않지만)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컴퓨터 그래픽 같은 디지털 이미지들을 종이에 프린트된 아날로그의 이미지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2.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이 다큐멘터리는 용산 미군기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특이하게도 ‘포켓몬 고’라는 증강현실 게임을 이용해 제작했는데, 핸드폰의 GPS를 조작해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지도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용산 미군기지 안을 돌아다니며 주한미군을 엿보며 시작한다.

미군기지는 한국이지만 한국이 아닌 특별한 공간이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조차, 지도에선 온통 녹지로 뒤덮혀 나오지 않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이다.

 ‘포켓몬 고’에는 여러가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장소인  ‘포켓스탑’이 있다. 포켓스탑은 유저가 직접 추가를 신청해 늘어나는데, 신청할 수 있는 조건에는 ‘눈길을 끄는 오브젝트', 지역주민 사이에서 알려진 장소'이면서  ‘교육적, 문화적 의의가 있는 장소일 것' 등등의 조건이 있다. 그런데 포켓몬 고를 통해 엿본 미군기지 안에는 놀랍게도 각종 전쟁기념물 등 수많은 포켓스탑이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꽤 많은 질문이 들었다.

 이 영화에선 감독이 직접 찍은 이미지보다 유튜브, 미군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공유된 영상과 핸드폰 화면 등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영화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일까?

 

3. 윗치 완더 휘슬

 

 나는 18년 겨울부터 19년 겨울까지, 1년간 도쿄에서 살았다. 영화의 도입부, 사람들이 시부야에 모여 2019년 새롭게 바뀐 일본의 연호 ‘레이와’를 외치는 장면이 있다. 감독은 나와 같은 장소에서,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쉬는 날에는 친구와 일본어 공부를 하는 무척이나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감독은 4년간 일본에서 살았고, 이 영화는 그동안 느낀 것들을 풀어낸 영화이다. 매일 아침 집 옆으로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던 집, 땅이 흔들리면 지진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경험, 발밑이 흔들릴 때 드는 불안감. 그녀는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 경험들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고, 공감했다.

 그녀가 눈에 띄게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이 영화를 통해서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과 그녀의 경험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쩌면 이제껏 내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문제점이라던지 모순점같은걸 생각하며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감정에서부터 출발한다면, 그리고 결과물로 나온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 또는 이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결과적으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 될 것이니까.

열쇠는 여기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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